글로벌 투자은행(IB)들이 한국 증시와 반도체 업황에 잇달아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지만 실제 외국인 수급은 정반대 흐름을 보이고 있다.
블랙록이 3개월 만에 한국 등 신흥국 주식 투자의견을 ‘중립’에서 ‘비중 확대’로 올리고, 골드만삭스 역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대한 ‘매수’ 의견을 유지했지만, 외국인은 최근 6거래일 동안 코스피에서 12조원 가까이 순매도했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종목에서만 10조원 이상을 팔아치웠다.
17일 한국거래소 정보데이터시스템에 따르면 외국인은 최근 6거래일(9월 9~16일) 연속 유가증권시장에서 순매도를 이어가며 총 11조9270억원을 순매도했다.
외국인들은 특히 SK하이닉스를 5조8539억원, 삼성전자를 4조3869억원 순매도했다. 두 종목의 순매도액은 10조2408억원으로 같은 기간 코스피 전체 외국인 순매도의 약 86%에 달한다.
하지만 글로벌 IB들의 시각은 다르다. 블랙록 인스티튜트(BII)는 지난 14일(현지 시각) 신흥국 주식에 대한 투자 의견을 ‘중립’에서 ‘비중 확대’로 상향했다. 지난 6월 말 한국 증시의 인공지능(AI) 관련 종목 집중도와 레버리지 확대 등을 이유로 신흥국 주식 비중을 낮춘 지 약 3개월 만이다. 이후 국내 증시 조정과 디레버리징으로 레버리지 부담이 완화됐다는 판단이다.
블랙록은 한국과 대만을 글로벌 반도체·메모리 공급망의 핵심으로 평가했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신흥국 지수의 12개월 선행 주당순이익(EPS) 증가율 전망이 34.2%로 미국(20.3%)을 웃돌고,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약 10배로 미국(19.9배)보다 낮다는 점도 근거로 제시했다.
골드만삭스도 지난 14일(현지 시각) 북미 투자자들과 한국 반도체 산업을 논의한 결과 메모리 업황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이 우세했다고 전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매수’ 의견을 유지했다. 3분기 D램·낸드 평균판매가격(ASP)은 전 분기 대비 약 20% 상승하고, 내년 HBM 평균판매가격은 약 100%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목표주가는 삼성전자 49만원, SK하이닉스 350만원이다.
하지만 증권업계 전문가들은 외국인의 매도세가 강해졌다고 해서 이를 반도체 업황에 대한 시각 변화로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이진우 메리츠증권 투자전략센터장은 “외국계 리포트와 외국인의 매수나 매도의 방향이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현재 국내 주식 시장 상황이 유동성 측면에서 우호적인 환경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센터장은 “AI 투자나 반도체 업황 자체는 예나 지금이나 변화가 없지만 주가에 단기간 동안 먼저 반영된 부분도 있다”며 “최근 상황은 반도체 업종에 대한 문제라기보다는 시장의 위험 선호 여부와 연결된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외국인 매도를 반도체 업황 자체에 대한 부정적 판단으로만 해석하기보다는 금리와 유동성, 통화·조달 환경 등 시장 전반의 투자 여건을 함께 봐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 증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시가총액 비중이 큰 만큼 외국인의 한국 증시 비중 조정이 반도체주 매도로 나타나는 측면도 있다는 분석이다.
자사주 매입도 최근 외국인 매도를 늘리는 요인 가운데 하나로 거론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대규모 자사주를 매입하면서 주가의 하방을 받쳐줄 매수 주체가 생긴 만큼, 외국인 입장에서는 보유 물량을 시장에 내놓기가 상대적으로 쉬워졌다는 설명이다.
삼성전자는 자사주 15조원 매입 계획을 밝힌 가운데 현재 1조50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40조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해 전량 소각하기로 했다.
이상헌 iM증권 연구위원은 “국내 증시 거래량이 줄어든 상황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자사주를 매입하면 기업이 매수해주는 물량이 생기기 때문에 외국인 입장에서는 팔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진 셈”이라고 분석했다.
향후 외국인 수급의 방향을 가를 핵심 변수는 반도체 업황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3분기 실적, 금리 흐름이 될 전망이다.
이진우 센터장은 “9월과 10월 초가 중요한 시기”라며 “내년이나 내후년 반도체 수요를 가늠해볼 수 있는 시기인 데다 10월부터 3분기 실적 발표가 시작된다”고 말했다. 이어 “3분기 실적이 얼마나 선방하거나 서프라이즈를 주느냐에 따라 하반기 국내 증시 향방이 결정될 것”이라며 “산업에 대한 성장성이 계속 지속되느냐가 1순위고, 그다음이 금리 안정”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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