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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거래의 역사 알아보기

닐라닐라 · 조회 0 · 추천 0 ·

안녕하세요

오늘은 선물거래의 역사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특별하게 선물 투자자분들에게 중요한 내용은 아니지만 선물의 유례가 어디서 시작되었고 어떻게 선물이란 것이 생겨났는지에 대해서 알아볼텐데요. 여유를 갖고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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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거래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전부터인 것으로 알려져왔습니다. 16세기 초반 유럽의 벨기에의 엔트워프, 프랑스의 리옹거래소 등에서 곡물, 양모, 향신료 등이 선물거래가 이루어졌다는 기록이 있으며, 17세기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번창에 따라 암스테르담 거래소에서도 선물거래를 하였다합니다. 국가별 선물거래의 역사를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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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본

도지마 쌀 시장 히로시게 (1797-1858) 작품 오사카 부립 나카노시마 도서관 소장

17세기경 도쿠가와 막부시대의 미곡거래 제도가 발생했으며, 이것이 세계 최초의 공식적인 선물거래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도쿠가와시대에 지방의 제후들은 중앙정부가 위치해 있던 에도에서 적어도 일년의 절반이상을 지내야만 했는데, 이는 쇼군의 명령에 의한 것으로 지방제후들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방제후들은 생활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자기의 영지에서 필요할 때마다 쌀 등을 운반하여 에도와 오사카의 현물시장에서 돈을 마련했으며, 나중에는 아예 창고를 지어놓고 이곳으로 자기 영지에서 생산된 물품을 한꺼번에 보관해 놓고 필요 시 내다팔아 현금을 마련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당시의 농사 기술로는 일년에 한번만 수확이 가능하기에 현금이 고갈된 일부 제후들은 가을에 수확할 농작물을 담보로 물표 즉, 창고증권을 발행하게 되었으며 상인들에게 이 물표를 팔아서 현금을 마련하였습니다. 이 물표들은 다시 상인 사이에서 거래가 되면서 유통성을 갖게 됨으로 일종의 유가증권의 형태로 점차 거래가 활발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당시의 오사카 요도야라는 큰 상인 집에는 항상 많은 상인들이 몰려들었으며, 이들은 이곳에서 거래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고, 또 거래를 성사시키기도 하였습니다. 요도야의 가격은 점차 오사카 시내의 쌀 가격을 선도하는 가격지표로 여겨지게 되었으며, 1659년에는 실제 일본의 첫 상품거래소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1697년 요도야는 자기의 본거지를 오사카의 관할지방인 도지마로 이전하였는데, 이곳이 바로 도지마쌀 시장으로 이름이 알려진 일본 최초의 상품거래소가 자리를 잡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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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미국

19세기 초기에는 농부들이 곡물이나 가축을 매년 일정한 시기에 출하시키는 것이 보통이었으며, 이에 따라서 출하시점에 홍수출하되는 공급량 때문에 가격이 낮아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시장상황은 창구의 부족과 수송수단이 마비된 시카고의 경우 특히 심해, 곡창지대인 종서부지역의 농부는 매년 추수가 끝나고 육로 또는 수로를 통해 출하시켰으나, 유통상의 문제로 결국 생산비도 안되는 헐값에 팔거나 길거리에 쌓아놓기도 하였고, 심지어는 5대호로 버리기 까지 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수확기인 가을에는 곡물의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였고, 이에 따라서 가격은 하락하였습니다. 반면에 여름이 되면 미국내의 곡물재고는 연중 최전선에 도달하게 되어 수요가 공급을 크게 앞질러 곡물가격이 급등하였으며, 필요한 곡물을 살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하는 듯 거래양상이 상당히 불안정하였습니다.

또한 곡물의 품질에 대한 기준이나 표준이 될만한 중량에 대한 관념이 없어 거래가 무질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부정거래가 극성을 부렸으며 이로 인해 분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이에 곡물의 수급과 유통의 원활성 및 효율성을 높여보자는 목적으로 1848년 4월 , 82명의 시카고 상인들이 상거래발전을 위해 설립된 것이 시카고상품거래소인(CBOT)로 세계 최초 거래의 중심이 되었으며, 세계적인 곡물거래량의 80%이상이 거래되고 있어 시카고 곡물거래소라고도 불립니다. 그러나 최근들어 금융선물거래가 급증하여 1984년 금융선물거래량이 곡물선물거래량을 상회하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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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영국

18세기 후반에 시작된 산업혁명으로 인해 귀금속을 자급자족해 오던 영국은 이들을 수입해야만 하는 입장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때 금속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예루살렘 커피숍에 모여 정보를 교환하거나 거래를 하게 되었는데, 금속거래량이 많아지고 장사가 복잡해짐에 따라서 더 넓은 장소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1877년 비로소 런던 금속거래소(London Metal Exchange, ltd)라는 휘장을 걸고 최초의 공식적인 거래를 시작했는데, 현재 28회사가 정내거래회원으로 거래 자격을 갖고 있습니다. 19세기에 영국은 석탄을 남미로 수출하고 그 석탄을 수송한 선박이 귀국 길에 들러 칠레에 들려 구리를 싣고 돌아왔는데, 항해기간이 약 3개월정도 걸렸습니다. 당시 무선통신이 발명되어 있었기 때문에 영국에 있는 상인들은 배가 구리를 싣고 떠났다는 정보를 갖고 화물이 3개월 후에는 도착할 것을 전제로 하여 3개월 후에 물건을 인도해주겠따는 약속의 거래를 하게 되었습니다. LME에서 3개월 선물을 기본계약으로 정하게 된 이유가 있으며, LME는 현재 전세계 비철금속시장에 가격의 지표를 제시하는 중심지로서 그 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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